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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노조가 자유언론운동의 추진체

동아일보의 젊은 기자들은 기자 개인의 신분보장이 중앙정보부원 말 한마디로 무의미해지는 풍토에서는 공정하고 객관적이면서도 권력의 횡포를 저지할 수 있는 보도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동아일보 언론노조를 결성하게 되었다. 그것은 기자들의 신분을 보호해 줄 능력도 없고 의사도 없는 경영주에게 그리고 유신권력에게, 기자들이 집단적 자위 수단을 확보하고 그것을 통해 자유언론 운동을 벌이겠다는 선언이었다.

10·24 자유언론 실천선언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선언 당일부터 억압이 개시되었다. 유신권력 뿐만 아니라 동아일보 사주도 그 선언을 동아일보 자체에 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아 언론노조를 바탕으로 결속된 기자, 프로듀서, 아나운서 등 언론 종사자들의 단결은 이 모든 탄압과 견제의 저지선을 뚫고 전진했다.

동아일보에서 시작된 자유언론 실천운동은 들불처럼 전 언론계로 퍼져 나갔고 유신권력과 언론 경영주를 한편으로 그리고 자유언론을 실천하고자 하는 언론인들과 국민들을 다른 한편으로 대회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시작된 것이 동아일보, 동아방송에 대한 광고 탄압사태였다.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하루아침에 동아일보와 동아 방송에 대한 광고가 사라져버렸다. 광고주들은 아무 말도 묻지 말라면서 동판을 회수해 갔다. 동아방송의 전파광고도 끊어졌다. 세계의 외신들도 이 기막힌 사태를 주목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유령이 동아일보를 삼키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온 국민과 세계가 이 광고 탄압사태에서 동아일보가 살아날 수 있을지 지켜봤다.

그 때 백지 광고란에 '작은 격려광고'가 나타났다. '동아 자유언론 만세', '동아야 너마저 배신하면 난 이민 갈거야 - 어느 이대생', '배운대로 실천하지 못한 부끄러움을 이렇게 격려 광고로 씁니다 - 서울법대 21회 졸업생' 등등의 수많은 격려광고가 답지했다. 유신 암흑시대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민의의 마당이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975년 초부터 유신권력과 동아일보 사주의 야합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2월말부터 자유언론운동에 앞장선 언론인들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해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75년 3월 17일 항의농성을 벌이던 언론인들을 폭력배를 동원해서 한밤에 쫓아냈다. 134명이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선일보에서도 자유언론에 앞장섰던 기자 30여명을 똑같은 수법으로 내쫓았다. 깡패를 동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내쫓고 '홍위병' 색깔 덧칠

그 당시 동아·조선 사주들은 자유언론운동을 벌였던 언론인들을 '홍위병', '파괴분자' 등등 붉은 색깔을 뒤집어 씌워서 내쫓았다. 유신권력은 이들 언론인들과 가족들을 미행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많은 동아·조선 해직 언론인들이 중앙정보부 등 수사기관에 끌려 다녔고 그들 중 상당수가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과 탄압으로 희생되었던 언론인들은 복직이 되거나 보상도 받았다. 그러나 1975년의 동아·조선의 해직 언론인들은 복직되거나 보상을 받은 일도 없다. 일부 극소수가 개별적으로 복직이 되긴 하였지만 그것은 공식적인 절차를 거친 일이 아니었다.

이제 유신독재치하에서 있었던 동아·조선의 언론인 해직과 독재권력 야합은 역사적 매듭을 풀 때가 되었다.

1. 동아 '백지광고' 사태를 비롯한 유신치하 언론탄압에 대한 국정조사, 청문회가 실시되어야 한다.

2. 동아·조선은 해직언론인의 원상복귀를 위한 조치를 지금이라도 취해야 한다.

3. 동아·조선은 해직언론인에 대한 보상조치를 취해야 한다.

4. 동아·조선은 해직언론인들과 국민들에게 독재 권력과 야합한 것에 대하여 사죄해야 한다.

5. 동아일보는 백지광고에 격려 성금을 보낸 국민들에게 사죄하고 격려성금을 사회에 환원해야한다.


○ 단 하루라도 언론인 복귀 희망

저 자신은 언론인으로 복귀할 수 있으면 정치인 지위를 포기하고 다시 언론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단 하루 뒤에 다시 사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언론인으로 복귀할 것이다. 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뜻이다. 배신과 거짓의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뜻이다.

동아·조선은 160여 명에 달하는 해직언론인들을 다시 복직시키고 그들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치를 취하고 국민들에게 사죄를 구하는 것, 그것이 동아·조선이 새롭게 태어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언론 사주의 관계, 야합이건 압력이건 그 어느 것이든지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몇 백년이 지난 뒤 종교재판의 잘못을 사죄하는 로마교황청은 그 권위와 명예가 손상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위대해진다. 지난 시대의 허물을 스스로 인정하고 바로잡는 자세에서 거듭 태어남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은 유충이 껍질을 벗고 성충으로 나아가는 성숙의 과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정체와 퇴행으로부터 성숙과 미래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사회 전체의 성숙, 위대함으로 연결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동아·조선 사주들의 용단을 기다려 본다.

2004년 10월 24일

열린우리당 의장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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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유언론을 외치던 언론인들을 내보낸 동아일보는...

지금 조중동이라는 멋진 타이틀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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